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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이냐, 머그잔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실 처음에는 난감했습니다.
회사에서 왠 ‘설거지’냐구요.
입사하던 첫날을 말하는 겁니다.
풀무원에 입사하는 모든 직원들은, 총무팀으로부터 머그잔을 하나씩 받습니다.
(출입카드보다 이 녀석이 먼저 나온답니다!)

바로 이놈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이런걸 다”하고 감사해하는 저에게 주변 분들이 넌지시 귀띔해 주시더군요.
“우리 회사는 1회용 종이컵을 사용하지 못한다”라고요.

이 머그잔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앉아 있자니
풀무원에 오기 전에 제가 다니던 회사들과 회사를 바꿀 때마다
수없이 사들이던 머그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더랬지요.

퇴근할 때는 그렇게 닦기 싫지만 출근할 때는 전날 닦아두지 않은 것을 엄청나게 후회하게 되지요.
금요일에 컵 설거지를 잊고 퇴근할라치면
월요일 아침에 그 컵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던 그 불면의 주말들!
그래서 결국 다시 기웃거리게 되던 종이컵 판매대.

심지어 매일매일 설거지를 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1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게 더 경제적인 게 아닌가 하는 계산까지 남몰래 해봤다는 사실.

일회용 종이컵 = 700원에 50개, 하루에 3잔씩 쓴다고 쳐도 700원으로 보름은 쓰지요.
머그잔은 하나에 5,000원이니까, 종이컵 3달 반 쓸 돈이고,
머그잔을 씻는 세제와 수세미가 3000원 정도니까, 종이컵 두 달 쓸 돈이고,
매일 5분씩 잔을 닦는 데 버려지는 제 인력과 안 닦았을 때 제가 받는 스트레스를 합하면,
(여기서부터 복잡해져요 @@)
차라리 종이컵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었지요.

게다가 풀무원이나 일부 친환경기업들처럼 머그잔을 회사에서 직접 제작하여 나눠주게 될 경우,
초기 구매비용이 3천명에게 나눠주는 기준으로 1천200만원이나 한다네요.
(총무팀 S님께서 머그잔을 주시며 귀뜸해 주시네요.)

하지만 종이컵 하나가 분해되는 데 무려 20년이나 걸릴 뿐만 아니라
그 종이컵을 3천명이 사용할 경우 그 컵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데
연간 7천260만원이나 소요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저도 마음을 고쳐먹기 시작했습니다. -ㅅ-
(게다가 종이컵을 만들기 위해 아마존 밀림에서 베어져 나가는 나무들까지 생각하면!)
그 후로는 머그잔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경제성을 따지지 않기로 했지요.
(사실 진짜 제대로 따지면 어느 쪽이 이길지 여전히 궁금하기도 합니다만.쿨럭)

그나저나 우리 회사가 머그잔을 쓴 지 3년이나 되었다니
머그잔을 쓰는 기업 중에선 제일 오래된 기업이 아닐까 싶네요.
(어쩌면 "업계 최초"가 아닐까요! 무흣흣.)
뭐, 벌써 몇 년째 쓰고 있지만 아직은 건재한 편입니다. 이 머그잔.

아침마다 머그잔을 닦으며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구요.
금요일에 닦지 않고 두고 간다 해도 이 녀석이 못쓸 만큼 썩는 게 아니라는 것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구요. ㅋㅋ

평소에 무심코 이 머그잔을 사용하다가 잔 아래쪽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올 때,
또는 찾아온 손님들에게 “저희는 1회용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
저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아, 잔 아래쪽에 적힌 글귀요?

“당신은 이미 풀무원입니다”랍니다.

@이상 ‘친절한’ ^ ^ 풀반장이었습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