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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Recipe/그 푸드? 저 푸드!

웨하스의 사촌, 브런치의 대명사...?!

살랑살랑 봄바람을 타고 온 와플의 유혹
어디론가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계절 ‘봄’ 입니다.

예쁜 찻집을 지나갈 때면, 그리고 그 안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영화 혹은 미.드 속 멋진 주인공들이 즐겨먹던 ‘브런치’가 떠오르지 않으신지요?

브런치의 대명사이자 많은 여성들로부터 끊임 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와플.
풀무원의 사외보 <자연을 담는 큰 그릇>에 와플의 역사는 물론
한국에서 제대로된 와플을 맛보는 법까지 잘 설명되어 있는 내용이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웨하스의 사촌, 브런치의 대명사
벨기에인의 와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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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무늬 요철(凹凸)이 가득한 도톰하고 둥그런 빵.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보드랍다. 여기에 버터와 잼, 시럽을 바르거나 생크림과 아이스크림, 과일을 듬뿍 얹는다. 와플(waffle)만큼 커피와 잘 어울리는 음식도 드물다. 게다가 한국 음식 트렌드를 이끄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인 브런치 때 먹는 대표적 메뉴로, 웬만한 카페치고 와플을 내놓지 않는 곳이 드물다.

와플은 꽤 유서 깊은 음식으로 고향은 유럽이다. 늦어도 12세기 그러니까 중세에는 유럽 전역에서 먹었다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영국을 정복한 프랑스 노르망족이 13세기쯤 와플을 만드는 도구인 ‘와퍼(wafre)’를 전해줬다는 기록이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이다.
흔히 ‘웨하스’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알려진 ‘웨이퍼(wafer)’가 와플의 사촌뻘 된다. 가끔 한국에서 웨이퍼를 ‘고프레’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웨이퍼를 뜻하는 프랑스말 ‘고프르(gaufre)’를 일본식으로 잘못 부르는 것이다.


웨이퍼가 와플의 사촌

많은 음식이 그렇지만 와플이라는 이름도 음식을 만드는 도구에서 유래했다. 넙적하고 대개는 둥근 철판 두 장이 이음쇠로 연결된다. 이음쇠 맞은편에는 길쭉한 나무 손잡이가 달려 있다. 쉽게 말해서 얕은 프라이팬 두 개를 서로 마주 보도록 붙인 형태. 철판 사이에 밀가루와 버터, 달걀, 설탕, 우유, 이스트(또는 베이킹 소다) 등을 섞은 반죽을 붓고 뒤집어가면서 고루 익게 한다. 서로 마주보는 철판 안쪽에는 가문의 문장 따위의 무늬를 새겼다. 더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열이 더 빠르고 고르게 전달되는 효과도 있었다.

호기심으로 넣은 무늬
처음에는 와플과 웨이퍼의 차이가 별로 없었고, 따라서 구분해서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인가 플랑드르, 그러니까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 살던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와퍼 안쪽 표면에 새겨진 무늬를 깊게 파는 ‘실험’을 시도했다. 실험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버터나 크림, 잼, 시럽 따위를 납작한 모양일 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담을 수 있었다. 더욱 두툼해지면서 폭신하고 부드러운 질감과 푸짐함을 획득할 수 있었다. 결국, 웨이퍼는 바삭함을 극대화시키며 고급 과자로 진화한 반면, 와플은 가벼운 식사 또는 든든한 간식으로 발전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다
한국에서 와플이 브런치 메뉴로 자리매김한 건 미국 때문이다. 주말 늦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브런치는 대표적인 미국문화. 아침식사로 흔히 먹는 와플에 달걀, 베이컨, 소시지, 햄 따위를 푸짐하게 곁들여 먹는다.
와플이 미국으로 건너간 건 정확하게 1620년이다. 와플을 미국에 가져간 건 필그림(Pilgrims), 즉 영국에서 종교적 탄압을 피해 범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이주한 청교도 102명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떠나기 전 네덜란드에 잠시 머물렀다. 그때 맛본 와플이 입에 맞았던 모양이다. 필그림은 와플 만드는 방법과 도구를 챙겨 메이필드호에 승선했고, 미국에서도 와플을 만들어 먹었다.
요즘 같은 모양의 와플이 미국에 들어온 건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덕분이다. 미합중국 초대 프랑스 주재 대사로 부임했던 제퍼슨은 와플 만드는 도구를 뜻하는 ‘와플 아연(waffle iron)’을 발견했고,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와플 아연을 들고 왔다. 제퍼슨이 소개한 새로운 모양의 와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8세기 후반에는‘와플 파티’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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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개의 프라이팬을 맞붙인 것 같은 모양의 와플 아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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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국에선 와플에 달걀, 베이컨 등을 푸짐하게 얹어 브런치로 먹는다 ]

한국에서 와플을 맛보려면

초기 형태 와플을 맛보려면 역시‘와플하우스(02-711-2649)’에 가봐야 한다. 서울 청담동 ‘하루에(02-546-9981)’는 고급 와플을 처음 한국에 선보인 곳으로 꼽힌다. 광화문에서는 일민미술관 1층‘카페 이마(iMA·02-2020-2088)’가 유명하나 번잡하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 서래마을 ‘카페 앳(at·02-3477-0720)’과 신사동‘페이퍼가든(02-3443-8880)’, 삼청동‘빈스빈스(02-736-7799)’와 최근 이태원에 문 연‘닐스 야드(Neal’s Yard·02-794-7278)’ 정도가 벨기에식 와플을 잘 한다고 소문 났다.



미국 와플과 벨기에 와플의 차이점?
와플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벨기에 동부에 있는 도시 리에주에서는 ‘리에주 와플’이 만들어졌다. 반죽에 ‘닙 슈거(nib sugar)’를 마지막에 더하는 게 특징이다. ‘펄 슈거(pearl sugar)’라고도 하는 닙 슈거는 지름이 약 2밀리미터인 굵은 제과용 설탕이다. 반죽을 철판에 붓고 굽는 과정에서 닙 슈거가 녹아 굳으면서 표면이 일반 와플보다 바삭해진다. 감자 와플은 아일랜드와 영국 남부, 독일 남서부처럼 감자가 많이 나는 곳에서 즐겨 먹는다.
일종의 감자전으로 와플 모양으로 굽는다는 점만 다르다. 홍콩에서는 격자무늬가 있다고 해서 ‘격자병(格仔餠)’이라 부른다. 우유 대신 연유를 넣어 달고 부드럽고 가볍다. 홍콩 거리를 걷다 보면 와플을 파는 상인을 쉽게 만난다. 큰 원형 와플에 버터와 땅콩버터를 바르고 설탕을 뿌리고 반으로 접어준다.
미국식 와플은 팽창제로 베이킹 소다를 쓴다. ‘오리지널’ 벨기에·네덜란드식 와플은 이스트를 쓴다. 베이킹 소다는 이스트보다 덜 부푼다. 그래서 미국식 와플은 촉촉하고 푹신하지만 바삭한 맛이 덜하고 무겁다. 이에 비해 벨기에·네덜란드식 와플은 더 쫄깃하고 가볍고 바삭하다. 미국에서는 보통 버터와 메이플시럽을 듬뿍 얹어 와플을 먹는다.

거리 음식, 우아한 브런치로 변신

한국에 와플이 처음 들어온 건 20여 년 전 즉 1980년대로 보인다. 대부분 외국문화가 그러하듯 와플 역시 미국을 통해 들어왔다. 들어온 건 미국이나 유럽처럼 쉽고 싸게 먹는 거리 음식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노점상에서 파는 값싼 와플은 대개 미국식으로 베이킹 소다가 들어간다. 이런 와플에는 대개 버터크림과 사과잼을 바른다.
와플이 거리 음식에서 한 끼 식사로 위상이 격상한 건 앞서 말한 대로 브런치 덕분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불기 시작한 브런치 열풍과 함께 와플 크기가 커지고 곁들이는 음식도 베이컨, 소시지, 달걀 등으로 미국처럼 푸짐해졌다. 가격도 1,000원대에서 1만 5000~2만 원대로 껑충 뛰었다. 요즘은 이스트로 발효한 유럽 본토 와플이 ‘벨기에식 와플’이란 이름으로 와플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글을 쓴 김성윤은 어려서부터 글쓰기보다 음식 만들기를 더 좋아한 사내다. 2000년 <조선일보>에 입사, 국제부, 경영기획실, 산업부를 거쳐 현재 엔터테인먼트부에서 음식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본 기사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2008년 겨울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블로그에 맞게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